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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컨택트(uncontact)시대의 인본적 도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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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 Vol.504
기고
월간디자인
전상현





 도시건축은 공간과 장소로 ‘관계’를 담아낸다. 도시건축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한 삶을 담는 것이라면 관계 맺기의 변화를 기술, 심리, 정서라는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산업화시대의 도시건축론처럼 기계적 효율성에 경도되어 심리적, 사회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행복한 삶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도시들은 인구 과밀화와 자동차 대중화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다시 말해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할 새로운 도시건축 모델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인물은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였다. 그는 혼잡한 도시를 자동차 통행에 유리하게끔 격자형의 대로 체계로 재편하고 단일용도의 수퍼블럭(super block)으로 나누어 표준화된 건축을 대량 공급할 것을 주장했다. 한 마디로 산업화시대를 맞아 도시건축도 기계적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후 르코르뷔지에의 모델은 현대도시의 표준이 되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뉴어버니즘(New Urbanism) 운동이 시작됐다. 뉴어버니즘 운동은 르코르뷔지에의 모델과 반대로 단일용도제 대신 혼합용도제를, 획일화된 대규모 주택공급 대신 다양한 유형의 주택공급을, 자동차 대신 보행자 중심의 도시건축을 제안한다. 그럼으로써 걷고 싶은 도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도시를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이후 뉴어버니즘 모델은 현대도시의 새로운 지표로 자리 잡으며 도시건축의 변화를 유도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르코르뷔지에의 모델은 기계적 효율성을 추종할 뿐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갈 인간의 심리와 그로 인한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의 도시건축은 그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는 한 세기 만에 다시 한번 큰 변화 앞에 섰다.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로 촉발된 언컨택트 사회로의 진입이 바로 그 변화다. 그렇다고 비대면접촉이 새로운 생활방식은 아니다. 우리는 이전부터 기술발달에 힘입어 우리 삶의 비대면접촉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 다만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접촉의 비중이 변곡점을 남길 만큼 급상승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식인들과 언론은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담는 도시건축도 완전히 달라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관계 맺기 방식의 변화를 점검해봐야 한다. 도시건축은 공간과 장소를 통해 관계를 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건 기술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 심리적으로 불편하거나 비효율적인 대면접촉이 비대면접촉으로 꾸준히 대체될 거란 거다. 그렇다면 여전히 유효할 대면접촉 관계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그의 저서인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주어진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집(제1의 장소)과 회사 혹은 학교(제2의 장소) 밖의 사회적 교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교류는 펍이나 카페 같이 평등한 관계로 부담 없이 들릴 수 있는 장소(제3의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며 이러한 장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실 그의 주장은 우리의 일상만 둘러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가 심각한 단계를 벗어나자 술집과 카페가 다시 사람들로 차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교류에 대한 욕구를 비대면접속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첨단기술은 대면 교류를 흉내 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이다. 기술이 어지간히 발전해서는 대면을 통한 정서적 교류를 완벽히 구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정서적 교류를 비대면접속으로 교체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미래에 살아남을 대면접촉 관계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정서적 관계뿐일까? 아닐 것이다. 재택근무만 봐도 심리적 외로움과 도덕적 해이, 혁신적 성과 도출의 어려움 등 다양한 이유로 평가절하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또 관련 연구결과를 보면, 대면으로 일한 그룹과 대면 후 온라인으로 일한 그룹 그리고 온라인만으로 일한 그룹의 생산성을 평가하는 실험에서 대면으로 일한 그룹의 생산성이 가장 높게 나왔다. 물론 개인의 생산성이냐 조직의 생산성이냐에 따라 또 일의 성격에 따라 평가 결과는 다를 것이다. 여하간 재택근무가 대면 업무를 모두 대체할거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쇼핑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판매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체험 소비'를 기획한다. 온라인에서 맛보기 힘든 체험을 무기로 소비를 유도하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은 온라인 시대에 오히려 차별적 가치를 지닌다. 이 외에도 다양한 관계들이 차별적 가치로 인해 대면접촉으로 남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언컨택트 사회로 가속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상이 ‘언컨택트’화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컨택트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효율, 심리, 상품 가치 등 다양한 요소들의 함수관계에 따라 우리 생활방식의 ‘컨택트’와 ‘언컨택트’의 비중이 결정될거란 얘기다. 그렇다해도 비대면접촉이 우리 삶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거라는 데 이견은 없다.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또 다른 코로나 사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건축은 언컨택트 사회로의 진입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도시건축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한 삶을 담아내는 데 있다. 사회심리학자 같은 행복학 관련 전문가들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간관계를 꼽는다. 앞서 이야기했듯 도시건축은 관계를 담아낸다. 그리고 동시에 관계에 영향을 준다. 도시건축 관련 전문가들이 변화하는 관계 맺기의 의미와 역할을 고찰, 공간 담론을 생산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과 더불어 심리, 정서를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세기 전 산업화 시기를 맞아 탄생한 근대 도시건축론은 기계적 효율성이라는 단일 잣대로 우리 삶을 담아내려 했다. 그 결과 우리 삶을 건강하게 담아내지 못했다. 도시건축이 또 한 번 급진적 변화 앞에 선 지금 산업화시대의 도시건축론처럼 심리적, 사회적 가치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에서 비대면 ‘접촉’과 비대면 ‘접속’이란 표현을 혼용한 이유는 예시로 든 현실 속 비대면접촉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접속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